성경적 세계관 7

📘 “열매로 나무를 알리라” –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오늘의 한국

우리는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 나라입니다.정치와 경제, 외교와 안보가 얽힌 복잡한 현실 속에서 어느 길이 진정한 ‘살 길’인지 국민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세계질서와 문명을 주도하는 신흥 강국 미국과 오랜 역사와 문명을 가졌지만 부패하고 타락한 중국 사이에 처해 있습니다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예레미야의 시대와 놀랍도록 닮아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1. 예레미야 – 외면받은 예언자, 그러나 진리를 외친 자예레미야는 남유다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당시 유다는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서 외교적으로 갈팡질팡하던 시대였습니다.애굽은 과거의 영광과 문화적 향수로 유다의 지도자들을 유혹했고,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예비하신 신흥강국이었습니다.그러나..

성경적 세계관 2025.05.02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린 성경번역

종교개혁의 시작, 성경 번역으로 시작되다.중세시대, 가톨릭 교회는 성경을 철저히 독점했습니다. 성경은 오직 라틴어로만 존재했고, 일반 대중은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이단으로 취급 되어 사제들이 성경을 독점 했습니다. 심지어 성당 미사 때는 성경책을 강대상에 쇠사슬로 묶어두어 사제들만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Chained Bible"(쇠사슬 성경)이라고 부르며, 대중이 성경을 직접 읽는 것은 심각한 이단으로 취급 되어 화형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존 위클리프 성경을 대중에게 돌려주다이러한 성경독점과 대중의 성경접근권을 막은 카톨릭에 반기를 들은 인물이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였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던 존 위클리프는 에..

성경적 세계관 2025.04.28

프린스턴에서 조선까지 - 태평양을 바라본 칼빈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

1898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이자 정치가,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는 역사적인 강연을 시작합니다. 이 강연은 단지 신학적 논의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지리적 방향을 선언한, 말 그대로 시대를 가르는 예언적 메시지였습니다. “칼빈의 근본 사상은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식되어, 우리의 발전을 자꾸 서쪽으로 옮겼고,이제 태평양 해변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곳으로 가려고 경건히 기다리고 있다.”—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1898, Princeton) 칼빈주의적 세계관은 유럽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미국 서해안에서 멈추지 않고 더 서쪽,곧 태평양 너머 아시아를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 선언은 오늘날 ..

성경적 세계관 2025.04.14

이성의 혁명과 믿음의 부흥 - 위그노, 프랑스 혁명, 영국의 요한 웨슬리

프랑스 혁명은 수많은 피를 흘렸고, 나폴레옹의 독재로 끝났다.같은 시대, 요한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영국을 변화시켰고, 문명과 도덕을 회복시켰다.그 뿌리는 어디서 갈렸는가?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거부하느냐.🧭 시대적 배경 비교항목위그노의 신앙운동프랑스 혁명요한 웨슬리의 부흥운동시기16~17세기1789~17991730~1790중심 가치신본주의(성경 중심)이성주의, 반기독교성령의 역사, 회개와 구원중심 계층장인, 상공인, 시민시민, 지식인, 계몽주의자평민, 광부, 노동자결과유럽 산업·문명 발전공포정치, 나폴레옹 독재도덕 회복, 시민사회 정착 프랑스 혁명: 이성의 광기와 실패한 자유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시작됐지만, 그 자유는 하나님 없이 만든 자유였고, 결국 폭력과 혼돈으로 이어졌습..

성경적 세계관 2025.04.14

예배로 역사를 바꾼 사람들 - 위그노와 듀폰의 신앙 여정”

예배를 위한 저항, 위그노가 보여준 성경적 세계관 – 폭약에서 복음까지, 하나님은 그렇게 길을 여셨다 위그노, 예배를 위해 떠난 사람들 “짐이 곧 국가다”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그렇게 말하며, 신앙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했습니다.장 칼뱅의 가르침을 따르던 프랑스 개신교도 위그노(Huguenots)는 1685년 낭트 칙령이 폐지되면서 본격적인 박해를 받게 되었고, 수십만 명이 프랑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들의 떠남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신앙적 엑소더스’,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고자 하는 믿음의 실천이었습니다. 🛠️ 직업은 예배가 되고, 기술은 사명이 된다칼빈은 말했습니다. “세속적 직업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면 그것은 성..

성경적 세계관 2025.04.09

눈물의 선지자 느헤미야와 박정희 대통령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술 맡은 관원이었던 눈물의 선지자 느헤미야는 강대국 페르시아에서 영화를 누리고 살 수 있었음에도 예루살렘의 황폐함과 무너진 성벽을 생각하며 눈물의 기도를 올린 선지자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을 누리고 왕의 음식과 음료를 검사하여 독살을 방지하는 중요한 요직이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고"(느헤미아 1:4)느헤미야는 선지자이며 정치적, 행정적 리더이며 개혁가였습니다. 눈물의 선지자로 불렸던 간절한 신앙인, 왕의 총애를 받는 유능한 행정가였으며 유대땅 총독으로 정치인이었습니다. 유대 지역의 행정·치안·세금 징수·국방을 담당하는 권력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느혜미야는 안락한 삶을 버리고 예루..

성경적 세계관 2025.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