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 보면, 특별히 마음에 머무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우리는 그를 너무나 익숙하게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왜 하필 아브라함일까?
인류의 첫사람 아담도 있었고, 방주를 지어 구원의 길을 열었던 노아도 있었습니다.
율법을 받은 모세,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아브라함만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도대체 그의 어떤 모습이 그런 칭호를 얻게 했을까요?
창세기 12장을 읽다 보면 단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그런데 여기서 ‘보여줄’ 땅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점이 늘 마음에 남습니다.
이미 보여준 땅이 아니라, 아직 알려주지 않은,
그야말로 믿음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어디로요? 얼마나 먼가요? 먹고 살 수 있을까요?"
그는 그 어떤 질문도 없이, 말씀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그의 믿음은 말이 아니라, 행동, 곧 순종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순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시험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하나님이 다시 내놓으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은 또다시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향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늘 멈춰 서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을까요?
그가 이삭을 바치면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그러니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지 마음속의 신념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순종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따르겠다는 자세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때로는 두려움 속에서 실수도 했지만,
그의 믿음은 점점 단단해졌고, 결국은 산 제물로 바칠 만큼 깊은 신뢰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릅니다.
믿음이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품고 실제로 걸어가는 순종의 여정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의 삶 전체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집니다.
나는 무엇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보이지 않는 미래,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라고 답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보여줄 땅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그 한 걸음, 한 결단이 지금 우리 믿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믿음에 대한 굳건한 확신이 서지 않는
매너리즘의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숱하게 기도를 하지만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믿음, 믿음의 분량을 채우지 못함에
좌절하곤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 때문에 좌절이 찾아 옵니다.
믿음 없음이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언제나 주님께 믿음을 붙잡아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하며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나도 그 믿음의 발걸음을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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